▲IT노조가 넥슨 노조에 깊은 반성을 촉구했다 
▲IT노조가 넥슨 노조에 깊은 반성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탈퇴를 언급한 이유 때문일까,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노조가 외주 제작사인 뿌리 스튜디오가 아닌 넥슨에 칼날을 들이미는 성명서를 1일 발표했다.  

과거 넥슨이 페미니즘 지지 견해를 밝힌 성우를 교체한 것이 시작이며, 이번 사건 역시 페미니즘을 표적삼은 사상검증이라고 지적했다. 단순히 오해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을 키우고 있는 것은 넥슨이며 이에 대해 성숙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넥슨이 뿌리 스튜디오에 외주한 프로젝트에 개인적인 사상을 은근슬쩍 집어넣으면서 시작된 사건으로, 사상검증과 별개의 문제다. 해당 인물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개인의 사상을 본인의 작업물이 아닌 의뢰 물품에 집어넣은 것이 문제시 되어야 한다.

해당 인물이 여성이고 여성이 대표로 있는 뿌리 스튜디오가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해서 사상검증이라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IT노조는 이번 사건을 게임업계의 흑역사라고 비판하고 외주 업체에 대해 희생양이라고 지칭했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것은 넥슨이며, 이번 사건으로 민주노총에 가입된 넥슨의 노동자들이 지난 주말부터 야근과 철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IT노조는 사실무근의 문제제기를 무분별하게 받아드렸다고 표현했으나 뿌리 스튜디오의 팀장은 SNS를 통해 본인이 해당 외주 작업물에 특정 사상을 넣었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노동자의 인권과 사상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시대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여성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사실 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사상을 옹호하는 일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누구로 인해 사건이 시작되었고 왜 문제가 되었는지만 생각하면 복잡한 사안이 아니다. 손가락에 의미가 없다면 삭제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의미가 있다면 혐오 표현이기에 세세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명백하게 넥슨이며, 외주 프로젝트에 특정 사상을 집어넣은 스튜디오와 인물에 대해 문제시 삼아야 하는 것이 옳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 성명서 전문

[성명] 있지도 않은 자라를 핑계로 솥뚜껑만 내다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넥슨 코리아의 일명 ‘집게손’ 사태에 대한 IT노조의 입장

게임업계에 멀쩡한 솥뚜껑 두드리기 소리가 요란하다. 있지도 않은 자라의 위험을 침소봉대하며, 솥뚜껑을 놓고 이게 자라인지 아닌지, 자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위험한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갑론을박하더니, 솥뚜껑을 색출하여 내다버리겠다는 결론에 이르는 모습은 실소를 감추기 어렵게 한다. 자라 닮은 솥뚜껑을 다 내다버리면 밥은 어떻게 지을텐가.

넥슨 코리아의 홍보영상 중에 게임 캐릭터의 손모양이 이른바 ‘집게 손’이라는 누군가의 놀란 가슴이 발단이 됐다. 단순한 오해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키운 건 그야말로 게임업계였다. 단순한 오해를 사실로 인정하여 사과하고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에 그쳤다면 하나의 조악하고 재미없는, 실패해버린 농담 같은 일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넥슨코리아는 게임업계의 흑역사를 더 이상 갱신하지 말라

하지만 해당 영상의 외주 제작을 담당했다고 알려진 업체 ‘뿌리’와 협력관계에 있던 게임 및 게임사들이 연달아 사과문을 발표하고, 그 끝에 결국 ‘뿌리’ 측에서 제작 담당 직원의 작업 중단 조치를 포함한 사과문을 발표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게임업계의 또 하나의 커다란 흑역사가 되었다. 아니, 이들이 이후 ‘집게 손’을 검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흑역사는 매일 갱신되고 있다.

더 이상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기 조차 민망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먼저 앞장선 한국여성민우회의 제안에 공감한 개인과 단체는 지난 28일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까지 가졌지만, 상황은 다시 한 번 더욱 민망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29일, 넥슨 스타팅포인트(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넥슨지회)는 전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의 문제제기에 대한 반대와 이른바 ‘집게손’ 검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해를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상황과 조건에서 오로지 조합원 개개인의 이해만을 유일한 척도로 놓는 것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모두 모욕하는 일이다. 조합이나 조합원이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면 그 잘못을 정확히 짚어 책임을 따져 묻고 그러한 잘못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 건강한 노동조합과 노동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민주노조가 가진 핵심적인 역할이자 의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넥슨 스타팅포인트의 성패는 이번 일에 대한 대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타팅포인트의 입장이 유리잔으로 팽이돌리기처럼 매우 불안하고 위험해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아무런 문제도 저지르지 않는 일개의 외주 업체를 게임업계 차원에서 희생양을 삼은 사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노동자는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이러한 고통은 설령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매우 부당하고 과중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는 ‘우리 조합원’ 보다 중요하지 않으니 그들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측면에서 건강하거나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언론은 후속 보도를 통해 해당 영상은 한 개인이 조작하거나 남 모르게 은근슬쩍 끼워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공정으로 만들어졌음을 밝혔다. 처음 놀란 가슴을 호소하며 그 죄를 저지른 자를 지목했던 제보자의 제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임업계가 지목하여 조리돌림하듯 사과문에 언급했던 업체 조차 실상 해당 영상의 문제 제기된 부분과 무관한 업체임이 밝혀졌다. 근거 없이 죽일듯이 달려들 때에는 전광석화 같던 게임업계가 일순간 매우 과묵해진 것이 그나마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기를 바랄 뿐이다.

게임업계는 업계의 규모만큼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 년간 반복되어온 일이다. 그럼에도 양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게임업계는 과거에서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다. 비단 게임업계만의 일이 아님에도, 게임업계에서만 유독 문제가 더 심각하게 불거지는 데에는 이유가 없을 수 없다. 게임산업이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커진 것에 비해 게임업계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책임의식은 매우 초라한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가 수익 확대에는 성공해왔는지 몰라도, 돈버는 일 외에는 전혀 성숙하지 않았으며 성숙하고자 하는 의지 조차 없기 때문이다.

넥슨은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반성해야 한다. 참담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임업계의 무책임과 무분별을 처음 드러낸 곳이 바로 넥슨이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지지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게임 성우를 교체한 2016년의 ‘넥슨 성우 교체사건’은 페미니즘을 표적삼은 사상검증의 시작이었다. 같은 민주노총 소속의 같은 IT업계 노조로서 넥슨 스타팅포인트에,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자정 노력이 ‘스타팅포인트’의 성공을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귀띔하고자 한다.

무대 위의 모든 배우가 한 명의 악인을 쫓아 달려드는 장면은 매우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악인이 사실 무고한 자였고, 그 무고한 자에 고통을 주고 벌을 내리고자 한 모든 이들이 자신의 죄를 넘겨씌워 죄를 면하고자 하는 데에 급급한 군상들이었음이 밝혀지는 장면은 매우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그런 장면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미루어 넘기려 했던 비겁함을 반성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만들어내어 오로지 무고한 자를 괴롭히기에 힘을 쏟던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을 중단하고 반성을 통한 회복과 치유가 필요하다

IT노조는 게임을 매우 무익하고 심지어 해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편견이 매우 부당하므로 이를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업계가 스스로 그러한 편견을 자신의 모습으로 실현해버리려 한다면 편견에 맞서는 우리의 싸움은 예상보다 더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피해 노동자와 피해 업체에 대한 적절한 사과와 회복 조치가 매우 빠르게 취해져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늦어질수록 피해자가 겪게 될 고통의 무게는 더욱 빠르게 커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넥슨과 관련 업체들의 죄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다음으로, 게임업계는 페미니즘을 자라보듯하고 노동자를 솥뚜껑 버리듯 하는 행태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 자랑스러운 게임업계의 역사라는 것은 매출액으로만 쓰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무근의 문제제기를 분별없이 받아들여 사과를 남발하고, 특정 업체나 노동자를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데에 급급한 미성숙한 태도는 한국 게임업계, 그 중에서도 넥슨의 규모와 영향력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지만, 소속한 회사나 조합원의 잘못을 덮어주고 울타리 밖의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는 조직이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는 게임업계, IT업계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 운동이 항상 경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IT노조는 한국 유일의 IT산별노조로서 이번 일을 계기로 이와 같은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IT노조는 어느 한 사업장, 어느 한 업종, 어느 한 고용형태의 노동자에 편들거나 치우침 없이 모든 IT노동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이번 일에도 피해 당사자는 물론 넥슨에서 열정을 다해 일하고 있는 모든 IT산업 노동자들이 받은 충격과 피해가 하루 속히 회복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이 일로 인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IT산업의 미래는 IT노동자의 손에 달려있다.

2023년 12월 1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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