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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숲은 말한다, '여심'과 '힐링'에서 놓친 것들을

기사승인 2020.03.26  15: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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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없습니다. 기승전결도 없고, 당연히 엔딩도 없죠. 채집하고 꾸미는 일이 전부입니다. 가장 멋있게 꾸며도 별 보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왜 하는 걸까요? 

2001년부터 시작된 시리즈의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숲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단 3일 만에 일본 내 판매량만 188만장, 닌텐도 스위치 소프트 중 역대 1위. 2001년 아무런 기대 없이 시작한 동물의숲 시리즈가 이제는 포켓몬을 뛰어넘는 성적을 올리고 있죠. 국내 게임 커뮤니티나 SNS조차도 동물의숲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게임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동물의숲은 말 그대로, 그냥 하게 됩니다. 수천 시간을 소비하는 유저도 흔하고, 10년 동안 붙잡아도 질리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어요. 굳이 이유를 분석하고 갖다붙이는 일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죠.

동물의숲은 철저하게 비웠고, 동시에 꽉 채운 게임입니다.

섬 이름 짓기부터 콘텐츠

플레이는 겉보기에 무한 반복입니다. 막노동 수준이죠. 나무를 베고, 광석을 캐고, 물고기를 잡고, 벌레를 잡고, 꽃을 옮겨심고.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저 마음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내 행동은 섬의 형태를 조금씩 바꿔나갑니다. 아무것도 없던 무인도에 안내소가 생기고, 정원과 캠핑장이 만들어집니다. 강 사이에 다리가 놓입니다. 박물관에 수집물이 보관되고, 동물 이웃이 하나둘 모여들어 주민이 됩니다. 정신이 들어보면, 작고 작은 요소가 조금씩 모여 하나의 마을이 완성됩니다.

섬 관리인 너굴에게 빚을 갚아야 해서 사채의숲이라는 오명도 있지만, 무기한 무이자는 어느 세상에서든 공짜 선물과 같죠. 사실 말이 빚이지, 집을 키우는 데 사용하는 비용과 같아요. 모이는 돈을 조금씩 지불할수록 생활과 풍경은 더욱 즐거워집니다.

동물의숲을 관통하는 키워드 '힐링'은, 이 모든 행동을 게임에서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토건의 민족이 되어 매일 피땀흘려 섬 개발에 매진하곤 하죠. 하지만 그것 역시 힐링입니다. 누구도 그런 미션을 유저에게 주지 않았거든요. 행동에 따라 마일리지가 쌓이면 여러 혜택을 구매할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기계적으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마일리지는 풍성하니까요.

만일 개발이나 채집에 구체적으로 미션을 지정하고 매일 하도록 지정했다면, 그렇게 피땀흘려 개발을 이어갔을까요? 혹은 SNS에 정기적으로 공유해야 보상을 준다면? 매일 미션만큼만 플레이를 마치고 쉬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순간 본인이 즐겁기 위해 하던 행동은 강요에 의해 하는 숙제로 변신하고 맙니다.

아이템에 따라 부가 효과나 성능 격차도 없습니다. 그저 수제 제작을 위한 재료만 필요합니다. 그렇게 제작한 물건은 어디에 쓰냐고요? 그저 섬에 배치할 뿐입니다. 내가 보기에 아름다워지면 그걸로 됐죠.

미안해 처음에 돼지인줄 알았어

동물의숲 세계에는 수백 종류의 동물 주민이 존재합니다. 무작위로 입주해오기도 하고, 다른 섬을 탐험하다가 만나 마을 이웃이 되라고 초대할 수도 있어요. 종의 분류만 있을 뿐 모두 다른 외형을 가지고, 성격도 특색을 가집니다. 말투도 다르고요. 

이웃 주민을 구성하는 과정은 성능과 효능, 그리고 물질적 이득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저 외형이나 성격, 대화가 마음에 들면 소중한 마을 이웃입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함께 지내다 보면 정드는 경험도 자주 겪게 됩니다. 그 수많은 동물 캐릭터가 모두 개성이 또렷하기 때문인데, 이들과의 상호작용은 모여봐요 동물의숲 최고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모여봐요 동물의숲에 추가된 콘텐츠, 박물관과 수족관 역시 게임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온라인게임이라면 전시품 모으기에 관한 미션이나 업적이 있었겠죠. 여기서는 그저 '간직할 뿐'입니다. 부엉씨에게 기증하지 않고 팔아서 더 돈을 벌어도 돼요. 모든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저들이 비싼 화석을 기꺼이 가져다주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남기고 기록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설령 박물관 구경을 단 한번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여심을 뒤흔든 게임은 많지만 문법은 조금씩 다릅니다. 심즈 시리즈가 인생을 표현하고, 스타듀밸리가 농경생활을 표현한다면, 동물의숲은 자연 그 자체를 '섬'이라는 화폭에 그려냅니다. 미세한 상호작용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되는 미술작품인 셈입니다.  

엔딩이 없는 샌드박스 소셜게임이라는 점에서 마인크래프트(마크)와 비교되기도 하는데요. 마크의 문법은 조금 다른 결을 지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완전한 샌드박스거든요. 미세한 블록 하나하나가 모여 무한의 조합을 형성하고, 원하는 대로의 오브젝트와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동물의숲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오브젝트는 완제품인 채 나타납니다. 자연 풍경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텍스쳐가 있죠. 이 제품들을 통해 섬을 구성하고 상호작용을 즐깁니다. 여기에 마이 디자인을 사용해 무늬를 자유롭게 넣는 정도입니다.

이 구성에서 좋은 게임이 만들어지려면, 당연히 오브젝트의 디자인은 모두에게 호감을 사야 하며 상호작용도 다채롭고 즐거워야 합니다. 개발 측면에서 엄청난 역량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죠. 대신, 힐링의 본질에는 가장 가깝습니다. 비록 스스로 구성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내가 키우고 가꾼 이 마을은 나 자신에게 오리지널이거든요. 

동물의숲에도 변수는 존재합니다. 나무를 베다가 벌떼에게 쏘이기도 하고, 밤에 돌아다니다 타란튤라에게 습격받아 기절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 세계는 어떤 변수도 치명적 손실을 주지 않습니다. 벌집은 떨어지면 약의 재료가 됩니다. 그 약을 먹어서 벌에 쏘인 상처를 없앨 수 있고요. 타란튤라를 잡으면 한 마리에 거금 8천벨을 줍니다. 돌발 사건이 벌어지고 캐릭터가 곤욕을 치르더라도, 절대 유저에게 불쾌한 경험이 전달되지 않는 설계입니다. 오히려 즐겁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들죠.

여심과 힐링 키워드를 노리는 수많은 게임 속에서, 동물의숲이 압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호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많은 게임들이 벤치마킹 과정에서 놓치거나, 알더라도 섬세하게 구현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표면적으로 즐거운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노동인 경우가 많습니다. 동물의숲은 노동인 것처럼 보이는 행위를 하는데, 본질은 유저 스스로의 유희가 되죠.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목적, 미션, 숙제에 지친 유저들에게 이 게임은 말합니다. "네가 하는 행위, 그 자체가 게임이야"

게임 속에서 우리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가르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여줄 뿐입니다. 설정을 바꿔 타임슬립을 하지 않는 이상 섬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똑같이 흘러갑니다. 꽃에는 곤충이 내려앉고, 과일나무 묘목이 비를 맞고 커나가지요. 지나가던 동물 주민과 쓸모 없는 선물을 교환하고,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수없이 낮과 밤을 오가는 생태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의 나 자신을 말하는 동시에,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상호작용 재미는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데에서 나옵니다. 섬은 곧 그런 가치입니다. 행위에 따른 보상이 아니라, 행위만으로 만족감을 얻는 게임이 어디 흔하던가요. 

지금 동물의숲 세계는 3월 26일, 북반구는 봄의 초입입니다. 어제 밤하늘은 별똥별이 자주 떨어졌습니다. 꽃을 심다 말고 소원을 빌었고, 아침 모래사장에는 별조각이 반짝거렸죠. 해변가 산책길에 커다란 산갈치도 낚았습니다. 조만간 집에 방 하나를 더 마련할 수 있겠네요.

곧 벚꽃 피는 4월이 찾아옵니다. 피크닉 가방을 준비하고 나무 배치를 정돈해야겠습니다. 열심히 삽질을 해봐야 그저 보기에 즐거울 뿐이라고요? 그게 바로 게임을 하는 이유거든요.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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