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식출시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배틀라이트 리뷰를 쓸 생각이었다.

2016년 스팀에서 얼리억세스로 화제가 된 게임이고, 몇몇 방송에서 접했다. 오직 손가락만으로 모든 승패가 갈린다는 콘셉트는 끌렸다. 저예산 게임의 비주얼이었지만 게임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식출시를 기다렸고,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넥슨의 퍼블리싱으로 다시 만났다. 미리 적어두지만, 넥슨은 인게임 콘텐츠와 밸런스를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정식출시되며 배틀라이트 로얄 역시 화제다. 하지만 오늘은 아레나 모드를 말한다. 배틀라이트의 근간이 되는 콘텐츠이기도 하고, 우선 이 이야기를 쓴 다음 로얄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플레이 3시간 뒤, 아레나 모드를 리뷰하는 대신 다른 것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글은 리뷰가 아니다. 눈물겨운 '똥손'의 투쟁기이며, 동시에 성장기이다.

막상 플레이를 시작하며 걱정이 많았다. 리그오브레전드(LoL)나 히어로즈오브더스톰(Hots)을 할 때도 피지컬이 준수한 유저는 절대 아니었다. 본인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라인전을 치르고 판단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챔피언 대사와 아나운서 멘트 모두 현지화 더빙이 되어 있었다. 성우 퀄리티도 훌륭했다. 블라섬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현지화를 열심히 진행하고 성우를 부각시키지 않은 것은 신기했다. 매력 있는 캐릭터 부각이 MOBA 홍보의 정석으로 꼽히는데. 

6명씩 무료 로테이션이 돌아가는 챔피언들을 하나하나 플레이하면서, 소위 '깨져가며' 시작했다. 내 제이드와 저쪽 제이드는 다른 챔피언인가? 저기는 은신 쿨타임이 두 배 짧은가? MOBA 장르에서 흔히 나오는 의문을 던져가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져도 억울할 것이 하나도 없어서였다. 운이 필요 없고, 팀을 잘못 만나도 사실 잘 하면 1:2도 이기는 게임이다. 모두 피하면 대미지 0, 모두 맞추면 이긴다. 그 점이 차별화된 맛이었다. 손가락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기묘하게 이기는 판도 있었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자다가도 생각난다. 시리우스 플레이였다. 첫 세트에서 아군 하나가 죽고 시작했는데 어찌저찌 흘러가면서 나와 적 제이드 한명씩 실피로 살아남았다. 자기장은 끝까지 좁혀졌고 반격기는 소모됐다. 궁극기를 시전하는 제이드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틀렸구나.

그 찰나, 이동기인 천상의 분열 쿨타임이 막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스페이스 키를 연타해 첫 발사를 흘려내고 등 뒤에서 평타로 마무리. 0.1초 차이 승부였다. 게임하면서 식은땀이 흐른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내 아이디가 MVP 화면에 뜨는 일은 없었다. 첫 세트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우리 팀은 이어지는 대결에서 거짓말처럼 내리 지며 패배했다.

평가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손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시리우스는 정말 강하다는 말이 많았지만, 실제로 상대해도 강했지만 직접 하면 위에 언급한 한 번 빼고는 진입 타이밍을 못 잡고 죽기만 했다. 잘 하면 단점이 없다는 데스티니와 폴로마도 해봤지만, 확실히 어려웠다. 스킬도 제대로 못 쓰고 황천길로 가길 다반사. 

쉽고 강하다고 추천받은 다른 챔피언은 근거리 라이곤과 지원형 블라섬이다. 그래도 블라섬은 정답이었다. 로드아웃에 평타 둔화기능 넣고 콩콩 때리면서 각종 지원기로 아군을 불사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곤은 이상하게도 손에 맞지 않았다.

분명히 잘 맞는 챔피언이 있을 것이다 싶어 연습 모드로 들어가 일일이 스킬을 시전해봤다. 그렇게 알리시아 구매 버튼을 눌렀다.

알리시아에 눈을 돌린 이유는 간단했다. 챔피언 선택권은 비싼 곳에 써야 이득이었다. 그중에 예뻤다. 그리고 냉기 법사다. 나는 히어로즈오브더스톰에서 제이나를 했고 오버워치에서 메이를 했다. 얼음은 언제나 옳았고 모든 조건은 완벽했다.

스킬이 손에 착 감겼다. 한기 디버프를 걸어 놓고 냉기 폭발로 동결, 그리고 팀원과의 연계 일점사. 상대를 느리게 하다 보니 생존력도 나쁘지 않았고 궁극기는 맞추기 편했다. 실전 첫 판을 이겼다. 그리고 계속되는 승리. 가장 고무적인 점은 점수와 딜량에서 1인분 이상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찾았다 내 사랑, 내가 찾던 사람.

단짝을 찾은 이후 플레이 만족도는 더욱 늘었다. 새로운 챔피언을 해보다가 결과가 처참해도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알리시아는 우리집 식탁에서 시원하게 먹는 메밀국수 같은 존재였다. 다른 챔피언에도 여유가 생겼다.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뿜어대는 애쉬카도 화끈했고, 근거리 중에서는 쉽고 강한 룩이 항상 무난하다는 것을 알았다.

레벨이 오르고 랭크 대전을 시작했다. '고인물'을 무서워하던 나 자신은 이제 없었다. 지면 지는대로 리플레이를 보며 얻는 것이 있었고, 생존기는 쓸까 말까 망설일 시간에 바로 쓰는 쪽이 가장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 호흡이 잘 맞는다고 친구초대도 받았다. 그렇게 싸움 자체에 빠져들었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배틀라이트 역시 진입장벽이 있다. 하지만 게임 시스템은 그 장벽을 유리 재질로 만들었다. 처음 마주치면 단단해 보이지만, 마음먹고 장비 하나만 가져오면 유리장벽은 금세 깨진다. 이후는 그야말로 실력을 맞대며 성장하는 싸움이다.

보통 진입장벽이 있다는 게임의 특징은 '알아야 하는 지식이 많다'는 것이었다. 캐릭터별로 아이템 트리는 어떻게 가는지, 운영은 어떤 식인지, 성장은 어떤 방향으로 하는지, 수많은 오브젝트들은 어떤 효과인지, 기타 수많은 정보들. 

배틀라이트는 이 모든 조건을 없앤 게임이다. 배틀라이트의 진입장벽은 순수하게 자신의 손가락이다. 반대로 말해볼까. 스스로 컨트롤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실력이 늘어가는 과정이 재미로 다가온다. 격투 게임의 성격이 곳곳에 묻어나면서도 조작법에 장벽이 없다. 문제점 파악이 쉽고, 리플레이 기능 덕에 고수의 플레이를 따라하기도 좋다.

초보 시절은 아무것도 못 하고 깨지는 판도 있다. 하지만 여느 게임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템포는 부담을 덜어준다. 모든 순간이 싸움이기 때문에 상대 챔프의 스킬을 익히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동종 장르 어떤 게임보다도 가볍고 빠르다. 그러면서 손맛은 훌륭하다.

직접 실력이 늘어가면서 느꼈다. 모든 인간은 성장한다는 사실을.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는 과정은 즐거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이었다. 마스터하려면 갈 길이 까마득하지만 배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후 로얄 모드까지 기록을 남기고 나서도 똥손 유저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못해본 챔피언이 많고 대결은 매번 새롭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아레나 한 판, 당분간 내 게임 일상에서 즐거운 스트레스 해소가 될 것 같다. 

그러니 내 손가락, 조금만 더 힘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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