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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고동빈, LCK 최고의 스토리텔러를 떠나보내며

기사승인 2019.08.20  16: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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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LoL 오프라인 대회의 시작은 2012년 1월, 온게임넷 LoL 인비테이셔널이다. 그 대회를 함께 한 최후의 현역 선수가 떠난다.

2019년 8월 17일, '스코어(Score)' 고동빈의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만 27세, 병역 복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스고수, 성불, 코돈빈, 강타의 신, 그밖에 수많은 비방송용 밈까지. 스코어는 한국 LoL 팬들에게 최고의 캐릭터인 동시에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LCK 준우승 4회, 롤드컵 선발전 최종전 탈락 3회.

스코어에게 '마지막 한 고비'는 잔인하게 높았다. 리프트 라이벌즈와 아시안게임의 쓰린 기억을 제외하더라도, 항상 피땀 어린 노력이 결실을 맺기 바로 직전에서 무너져야 했다. 

2015년 첫 롤드컵에서는 팀을 혼자 이끌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라가스의 술통 활용은 매번 예술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LoL은 혼자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8강에서 쿠 타이거즈의 공세에 라이너들이 무너지면서 비록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스코어는 이후 한국 최고의 정글러 중 하나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그의 마법 같은 준우승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섬머 스플릿부터였다. 결승 상대인 락스 타이거즈 역시 첫 우승이 간절한 팀이었다. 

난전 속에서 스코어의 활약에 힘입어 도달한 최종 5세트, 우승컵이 걸린 마지막 전투에서 바론 체력 2를 남기고 빼앗기는 모습은 너무나도 강렬한 비극이었다. 하늘이 버린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슈퍼팀' 2년차에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2018년 섬머 결승, 상대는 돌풍의 신생팀 그리핀. 이번에도 스코어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정글에서 내내 우위를 가져가며 게임을 이끌었다. 하지만 명승부의 향방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패배 문턱까지 겪은 4세트를 결국 잡아내고, 다시 승부는 최종 5세트로 향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 바론을 둘러싸고 강타 싸움이 펼쳐졌다.

3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역사는 반복될 수도 있었다. 그의 준우승을 지켜보며 프로의 꿈을 키우던 소년 미드라이너가 대신 바론을 잡아내지 못했다면.

마침내, 승리의 신은 스코어에게 결승 MVP를 허락했다.

2019년, 스코어의 마지막 시즌은 순탄하지 않았다. 작년 롤드컵 역시 8강에 그친 뒤, 슈퍼팀의 멤버들은 대부분 이적했다. 그리고 KT는 리빌딩에 실패했다. 스프링 스플릿에서는 승강전에 다녀오는 수모를 겪었다.

팀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잇따랐고, 스코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분명 전성기 경기력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폼을 끌어올렸다. 

섬머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코어는 다시 그라가스를 픽했다. 그리고 협곡을 지배했다. 2015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자신의 역량을 세계에 알린 술통이, 4년 뒤 팀을 승강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것은 스코어의 은퇴전이었다.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 LCK에 뛰었다는 것 자체가 기억에 남는다" - 마지막 경기 MVP 인터뷰 중

그는 탑솔러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준수한 원딜이었고, 마지막에 위대한 정글러로 불렸다. 

한국 LoL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스코어는 모든 LCK에 참가했다. 무대는 계속 바뀌었다.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상암 OGN e스타디움을 거쳐, 현재 종로 LoL 파크까지. 무대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코어는 그곳에 있었다.

주요 커리어는 LCK 우승 1회, 월드 챔피언십 8강.

스코어는 최강이 아니었다. 커리어 최고도 아니었다. 모든 선수가 꿈꾸는 롤드컵 결승 무대도 오르지 못했다. 좌절할 만한 순간은 많았다. 혼자 역부족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LCK를 대표하는 역사의 상징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프로였다. 팀을 위해 포지션을 바꿔가며 희생했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의 구설수도 없었다. 자신의 인성과 노력을 결과물로 보여줄 능력도 가졌다. KT가 가장 부진한 순간에도 스코어만큼은 건재했다. 신에게 선택받지 못해도, 선택받을 때까지 버텨낸 선수다.

2020년부터 스코어가 없는 LCK가 시작된다. 어린 팀과 선수들도 새롭게 떠오르면서 판이 뒤집혔다. 역사의 새로운 막이 오른다면, 무대 뒤편에는 이전 막을 내린 주인공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이 스코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생애 첫 LCK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 스코어는 방송 카메라가 모두 꺼진 뒤에도 무대에 홀로 남아 있었다. 스코어는 이제 인생의 새로운 무대를 준비한다.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솔로 랭크 아이디처럼 '좋은날'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길용찬 기자 padak@gameinsight.co.kr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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