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가려는 멘탈을 붙잡았다. 그러자 오글거림을 겪는 과정도 즐거워졌다.

플레이를 진행할수록, BTS월드가 '항마력 원심분리기'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원심분리기는 축을 중심으로 물질을 회전시켜서 원심력을 가하는 장치다. 밀도 차이를 이용해 여과하는데 쓴다. BTS월드를 아직까지 즐기는 유저는 진정한 팬심을, 혹은 위대한 항마력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번 '이겨낸' 이들에게 BTS월드가 주는 보상은 각별하다. 팬심을 아주 확실하게 자극하는 게임은 찾기 쉽지 않다. 비록 팬심까지는 없지만, 콘텐츠를 탐색하는 사람으로서도 진심으로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이번에는 어느 매니저의 처절한 생존기이자 멤버들의 예측불가 성장기다.

게임 시작과 함께 제공받는 5성 카드는 태형이(뷔)가 나왔다. 슈퍼스타BTS도 첫 S등급 뽑기 멤버였는데, 이 인연 무엇. 4성 뽑기권도 뷔가 나왔다.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다. 그렇게 태형이는 내 최애캐가 됐다. 본의 아니게.

타이틀 로딩에서 나오는 DNA 오르골 버전은 내 취침 테마곡이자 기상 테마곡이 됐다. 어쩔 수 없었다. 차마 출퇴근길에서 실행하지 못했다. 아이돌마스터 시리즈도 만원 지하철에서 당당하게 플레이 했지만 도저히 이건 안 되겠다. 지금도 아미 여러분 중 다수는 스마트폰 시야각을 사수하면서 은신 플레이를 즐기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드래곤볼처럼 멤버를 하나씩 모으고, 숙소를 새로 잡고 어거지로 청소를 시키고, 연습 일정과 선생님 섭외까지 직접 논의하면서 이들의 영세 데뷔 프로젝트 스토리가 흘러간다. 곡 가사를 논의하다가 윤기가 화를 내기도 한다. 뭔가 억지로 싸우는 것 같지만 스토리의 긴장감을 위해 넘어가도록 하자. 실제로 재미는 있다.

이 세계의 빅히트는 사장 겸 매니저 1인과 아이돌 겸 스태프 7인으로 구성된 조직 같다. 연예기획사에서 상상 가능한 모든 업무를 매니저와 멤버들이 해내야 한다.

1990년대 소년만화라면 사라졌던 사장이 데뷔 후에 인자한 표정을 짓고 나타나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수련이었다"라고 손을 내일 것만 같은데, 이후 업데이트에서 정말 그렇게 흘러가진 않겠지. 아니라고 말해줘, 제발.

정신을 차려 보니 굿즈 시장조사를 석진이와 정국이가 하고 있고, 지민이와 남준이가 영수증 증빙 처리하러 40분간 자리를 비웠다.

삐빅- 긴급스케줄이 떴다. 항상 저럴 때만 뜬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냥 넘기기엔 너무 소중한 보상이다. 할 수 없이 즉시종료를 누르고 전원 투입에 나섰다. 컴백 보도자료 작성에 7명 전부를 40분씩 동원할 일인가. 보도자료 그렇게 엄청난 대작업 아니다. 아니 홍보 마케팅 여러분의 노고를 비하하는 건 아니고…

이 세계의 미스터리는 또 있다. 스케줄을 뛰지 않는 멤버는 왜 영원히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따로 연습하느라 그렇다면 능력치라도 올라가야 할 텐데. 잠만 푹 재워도 회복이 좀 됐으면 좋겠다. 커피 한번에 10잔 먹여서 일 보내는 건 좀 너무했다. 미안해 윤기야,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데뷔하고 돈 벌면 카페인중독 치료하러 가자.

미션들도 극한상황이 따로 없다. 아니 방송국PD 조카 생일파티를 차려줘야 한다는 미션부터 하이퍼리얼리즘 아닌가 의혹이 드는데, 생일파티를 실패할 수가 있어? 너네 생일파티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다음 시네마틱에서 의문이 풀렸다. 아, 남준이가 풍선에 불을 붙였구나. 남준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아이돌 육성이 이렇게 수많은 터치를 요구한다는 것은 결구 매니저의 역량이 근성에 달렸다는 교훈을 의미하는 듯하다. 컨디션 일괄회복이나 중복카드 일괄교환 같은 UI 개선에 목마르게 됐다. 가내수공업으로 한땀 한땀 카드 갈고 있는 내 모습, 장하다. 카드 특정능력치 정렬 같은 기능도 좀, 지금 미션마다 카드 능력치 하나씩 계산해봐야 한다.

챕터3까지 "데뷔 그거 참 쉽죠"라고 생각하며 신나게 진행했지만, 희망고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챕터4부터 슬슬 연예계 현실의 냉혹함이 펼쳐진다. 미션 한 판에 날개(행동력)가 8개씩 들어가는데, 빅히트가 업무 지원은 둘째치고 날개라도 택배로 부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느긋함을 가지고 천천히 게임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날개를 몇 번 현금으로 샀다. 비쌌다. 어디서 불사조 깃털이라도 뽑아 쓰는 것이 분명했다. 과금 없이 영영 깨지 못할 시스템은 아니다. 시간이 걸릴 뿐. 4성 카드들을 진화시키면서 천천히 키우다 보면 빛은 오게 돼 있었다.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다. 멤버들이다. 쉬지 않고 내 항마력을 시험하려 전화로, 문자로, SNS로 공격을 해온다.

"연습실에 잘생긴 남자가 있어서 깜짝 놀랐더니 거울을 본 거였다 휴"라는 석진이의 글은 선을 넘었다. 일단 "거울이 덜 닦였다"고 댓글을 달았다. 우리 부디 오래 웃으면서 지내자.

태형이는 사실 모든 발언이 상식적이지 않지만, 비행기 태워주겠다는 말에 "다음엔 매니저님이랑 구름 만지러가야지" 라는 말을 보고는 잠시 한숨을 쉬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구름 만지러 가기 전에 내 멘탈이 먼저 승천할 것은 확실하다.

이 모든 것들도 익숙해지자 아무렇지 않게 됐다. 그러나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업그레이드 공습이 시작됐다. 지민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몰랐다, 영상전화였을 줄이야.

화면 왼쪽 위에 갑자기 오징어 영상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전면 카메라로 찍히고 있는 내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고 두 번 놀랐다. 기겁한 와중에 지민이가 "매니저님 왜 안 놀러와요, 우리 안 보고 싶어요?" 이러다가 호석이가 "치킨 좀 사주세요 아아앙" 앙탈을 떨고 뒤이어 다른 멤버들이 각자 재롱잔치를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찍을 일인가 화를 내려다가, 여자 아이돌로 바꿔서 상상해봤다.

아, 잘 찍었네. 촬영에 정성이 느껴진다.

1주차에 챕터5까지 왔지만, 7일 내내 여기서 막혀 있다. 아이돌의 데뷔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감성-지혜 특화카드가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뽑기와 강화-진화를 반복한 결과 어느 정도 넘어갈 기반은 마련했다. 훗날 챕터6에서 데뷔를 성공시키면 감동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희생된 진화석이 생각나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진화석 좀 팔아주세요. 진짜 지른다니까.

어나더드라마는 다 재미있다. 완전히 새로운 IF스토리이기도 하고, 시네마틱과 전개 모두 공들인 흔적이 묻어난다. 다만 주인공이 멤버들을 만나기 위해 준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가끔 저질러서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데, 단방향 스토리니만큼 자체 투명인간 필터링이 필요하다.

모두 2~3챕터 정도 진행한 시점에서 베스트 전개는 태형이다. 집에 태형이만한 아드님이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동갑내기 친구라고 하는 캐릭터가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알찬 재미를 선사한다. 절대 강제 최애라 추천하는 게 아니다.

스케쥴 기다리는 동안 할 것 없어서 스타일링도 만져봤다. 이거 옷 좀 많이 추가해서 따로 콘텐츠로 만들어도 괜찮겠는데, 아이러브니키처럼. 부담스러운 제복 다 벗기고 사복 스타일로 입혔다. 나중에 쇼핑할 때 사도 괜찮을 옷도 종종 보인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웬만하면 다 보기 좋더라. 나비넥타이 빼고.

BTS월드 OST 앨범도 구경해볼 수 있었다, 내 것은 아니다
BTS월드 OST 앨범도 구경해볼 수 있었다, 내 것은 아니다

아직 궁금한 것은 많다. 아직까지 5성 카드는 처음 확정으로 받은 하나뿐인데, 뽑기 운이 있었다면 진행이 얼마나 달랐을까? 그리고 뽑기 화면 뒤에 토성 배경은 무엇일까, BTS월드를 넘어 BTS유니버스를 구상한다는 암시일까? 보지 못한 스토리도 남아 있으니 플레이는 이번 주에도 계속된다.

조금 퉁명하게 썼지만, 마냥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기도 했고, 나중에는 동생 같은 느낌이 들면서 캐릭터를 살펴보는 재미와 함께 정이 들기도 했다. 얘들아, 나중에 게임을 그만둬도 잊지 않을게. 가끔씩 들어올테니 연락도 좀 해주고. 그런데 영상통화는 안 해도 되고.

마지막 3편에서는 전반 평가와 BTS월드의 의미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저작권자 © 게임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