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구나.

26일 저녁, BTS월드 서버가 처음 열리는 순간 든 생각이다. 출시 전부터 반드시 해보이고 말겠다며 호언장담한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동료 기자들은 이미 출시 전 홍보영상부터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내가 해야만 한다.

실제로 자신은 있었다. 한때 여성 게이머 대상 게임의 시장성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견뎌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전 리듬게임 슈퍼스타BTS를 통해 어느 정도 예습도 했다. 아이돌 노래도 좋기만 하다면 성별 가리지 않고 잘 듣는다. 그렇게 실행 버튼을 눌렀다. 방탄소년단 친구들아, 내가 매니저인 이상 풀 스케쥴이다.

BTS월드는 시네마틱 육성 시뮬레이션, 육성과 수집, 교류를 섞은 형태다. 플레이 결과 스토리 비중이 높고 볼륨도 상상 이상이다. 

중국 페이퍼게임즈의 여성향 연애시뮬레이션 러브앤프로듀서와 많은 부분에서 플레이 방식이 비슷하다. 전화, 문자, SNS로 교류하는 콘텐츠나 카드 능력치를 통해 클리어하는 미션 시스템 등. 결국 항마력이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왠지 모르게 자꾸 선 넘는 매니저 주인공부터 불안하지만, 스스로 냉철한 선택지를 고르며 애써 호감도를 깎아나갔다.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초반은 정말 위기였다. 왜 반짝이는 배경색에 한 줄로 구릿빛 피부색, 선한 눈빛 카리스마, 백옥 같은 피부 같은 표현이 나오는 것인가. 거기에 그 문장이 가상의 캐릭터도 아니고 실제 인물 사진과 함께 나타나는데...

 

(대충 몸을 뒤틀며 절규하는 글)

 

손발이 나선형으로 꼬부라지는 기적적 체험 속에서, 최대한 게임 시스템에 집중하며 평안을 되찾았다. "나는 지금 가상의 존재들을 육성하는 게이머일 뿐이다, 2012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겪는 또 하나의 유니버스인 셈이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본 1400만 개의 과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면 마음은 편해진다.

슈퍼스타BTS를 플레이하면서도 느꼈는데, 카드나 앨범 표지처럼 비슷한 스타일링을 한 이미지에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자는 남자의 얼굴을 크게 유심히 보지 않는 편이다. 아미에 입문하기 위한 첫 시련인 셈이다. 게다가 "아미 여러분은 그림자만 봐도 누구인지 다 알잖아요" 라고 말하는 듯 이름을 적어주지 않는 UX디자인이 상당히 많다. 초심자는 어떻게든 익혀나가야 했다.

드디어 멤버의 얼굴과 캐릭터를 파악한 입장에서, BTS월드의 등장인물인 방탄소년단 7명 멤버를 만난 초반 인상을 적어봤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다. 스토리는 현재 챕터5까지 진행했다. 

석진(진) : 로맨틱코미디 장르 남자주인공 같다. 기품 있는 인상과 풍채에 아주 정석 미남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자기 잘생겼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실제 잘생긴 남자만큼 꼴보기 싫은 것이 없다. 그런데 입을 열면 뭔가 이상하고 하는 행동이 허수아비 같다. 이게 그 반전매력이구나. 기습적으로 잘 웃겨서 현실웃음까지 몇 번 터졌다. 고급진 동네형이라는 캐릭터는 서브컬처 시점에서도 꽤 개성 있다.

윤기(슈가) : 츤데레 군기반장으로 추정된다. 어나더스토리에서 갑자기 장르가 베토벤 바이러스로 변신한다. 음악 이야기만 나오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해진다. 자기 일에 열중하는 남자가 섹시하다고 했던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명을 가장 싫어했다. 이해한다. 스스로 너무 예민했다고 느끼면 무심한 척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치 남성향게임 여주인공이 시공의 폭풍에 휘말려 여성향에 떨어진 모양새다.

호석(제이홉) : 스토리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항상 웃고 있는 것은 알겠다. 멘트가 튀는 법이 없다. 어느 집단에 데려놔도 두루두루 어울릴 것 같은 관상과 분위기를 지녔다. 게임으로 따지면 2~3번째쯤 주인공 후배나 동생으로 등장해 발랄하게 주인공을 리드하는 서브 공략대상 캐릭터다. 카드 중에 유독 "나는 깜찍이다"를 표현하는 듯 신묘한 포즈가 많다.

남준(RM) : 게임 시작부터 '포스'를 풍겼다. 현실에서 갑자기 단둘이 마주쳤으면 형이라고 불렀을 것 같다. 원래 나보다 세 보이면 형이다. 스포츠맨일 줄 알았는데, 문예창작과 지망했다길래 호감이 생긴다. 뭔가를 자꾸 흘리거나 부수고 다니는 것도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글솜씨가 좋아 보이고 몹시 논리적이다. 만일 키보드배틀 경연대회를 연다면 유력 우승후보로 지명하고 싶다. 

지민 : BTS를 처음 봤을 때 막내인 줄 알았다. 귀염상이며 눈매가 호감이다. 떡집 손자로 등장하는데 실제 장사를 했어도 위화감 없을 관상이다. 어나더스토리 연기력이 아주 좋아서 놀랐다. 멍석 깔면 뭘 해도 잘하는 것 같다. 음식을 탐하는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라 밥 사주고 싶다. 리액션이 아주 좋아서 놀려먹을 때 가장 보람찬 것 같다. 동생을 한 명 삼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민을 택하겠다.

태형(뷔) : 정말, 모르겠다. 이 사람의 성격을 정의할 수 없다. 아니, 정신세계부터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발화가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에서 결로 이어진다. 이영도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데오늬 달비가 이 화법이었는데 현실 인간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같이 살면 평생 심심할 일이 없겠다. 물론 평생 평화로울 일도 없을 것 같지만. 유리멘탈 boy라는 가사를 짓는 감성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정국 : 막내인데 정말 막내처럼 행동한다. 대화 이벤트 때 화면 이미지도 일부러 귀엽게 표현한 것 같다. 지민과 다르게 왠지 놀리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못 놀리겠다. 성숙하고 싶어 하는 애어른증후군이 초반 감지됐는데, 이후 정말 성숙한 것 같은 성장형 캐릭터가 엿보인다. 카드 이미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가끔 못 알아봤다. 웃을 때 제이홉과 구분이 어려웠다. 노래를 시작하면 갑자기 듬직해진다.

2012년으로 타임슬립했다는 설정은 뻔한 듯 효과적인데, 이후 월드스타가 된다는 결과를 뻔히 알고 있다는 현실 아이돌의 한계를 중화시킨다. 주인공부터 이미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단계에 도달하기까지의 디테일한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도 멤버별 프로필과 각종 검색자료를 함께 띄워놓고 게임 플레이에 힘쓰고 있다. 그 바람에 벌써 고증오류를 하나 찾았다. 뷔가 대구지역 출신인데 시골에 가니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하지만 그밖의 것들은 멤버들의 실제 사례를 충실하게 살린 정성이 눈에 띄고, 멤버들이 BTS가 아닌 다른 길을 걸었을 경우 각자의 어나더스토리는 분명 신선하다.

카드 레벨업에 쓰는 꽃 모양의 재료는 '스메랄도'인데, BTS 세계관 구성과 차후 일정 힌트에 쓰기 위해 빅히트에서 현실처럼 꾸몄던 허구의 꽃이다...와 같은 TMI를 무럭무럭 흡수하고 있다. 이 콘텐츠를 완수하기 위해 조만간 아미 가입까지 해야 할 기세다. 

게임 OST로 독점 공개된 Heartbeat는 정말 듣기 좋다. 그리고, 의외로 시네마틱은 손발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정말 드라마 한 장면처럼 공들여 찍은 티가 나고, 멤버들의 연기도 꽤 자연스럽다. 멤버들 사진과 함께 요동치는 말풍선 스토리가 좀 힘겨울 뿐. 

BTS월드 탐험은 이제 시작이다. 적응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으니 갈 데까지 가보려 한다. 다음 체험기에서 30대 아저씨 매니저의 BTS 육성훈련이 이어질 예정이다. 자꾸 BTS보다 나 자신을 단련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착각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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