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선명하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의 초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신임 장관이 임명된 올해 4월은 국내 게임계에 폭풍이 불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규제와 진흥을 논하는 줄다리기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만큼 문체부의 대처와 행보가 중요해진 시기다.

박양우 장관은 과거 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을 거쳐 차관을 역임하면서, 게임에 우호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다. 장관 임명을 두고 게임 자체에 깊은 이해를 가졌고 게임산업 진흥 의지도 확실한 인물이라는 긍정적 전망과, 한 부처의 경향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교차했다.

박양우 장관이 문체부에서 임기를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보여준 게임 관련 움직임은 기대를 걸기에 충분해 보인다.

문체부의 시계는 빨라졌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및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협력해 4월 29일 WHO에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록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5년간 청소년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게임과몰입이 부모와 학교 환경 등 심리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자료를 포함하는 등 학문적 근거도 탄탄하게 보강했다.

WHO 총회에서 ICD-11 코드 등록이 확정된 뒤에도 후속 조치는 빠르고 명확했다. 문체부는 "충분한 과학적 검증 없이 내려진 결정"이라며 국내 도입에 반대 의견을 명시했고, WHO에 이의를 추가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정무부처간 상의 없이 질병코드 분류를 수용하기로 정한 뒤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히자, 복지부가 주도하는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체부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여론전에 나설 계획이다.

박양우 장관은 LCK 서머스플릿 개막전이 열린 6월 5일, 서울 종로 LoL파크를 직접 방문해 경기를 관람하고 e스포츠 현황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문체부와 정부가 게임과 e스포츠 산업에 실질적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 현장에 왔다"고 말하는 동시에, "대통령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며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순방에 게임업계 주요 인사들이 동행해 e스포츠 친선전을 함께 관람하며, 박양우 장관도 여기에 참여한다. 당장 국면을 극적 전환하는 이벤트는 아니지만, 이런 그림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장기적으로 인식을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전까지 문체부는 게임 이슈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임 장관들 역시 게임행사를 종종 방문하며 게임산업 진흥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으나, 부처와의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정무부처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린 사안에서 문체부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인해,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반응이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업체와 문체부 간 의사소통이 확실히 원활해졌다"면서 "각종 이슈로 힘든 상황에서 조금씩 의견이 모이는 느낌이 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에 우호적 입장을 가진 계층 및 상당수 기성 매체들은 문체부의 행동으로 일어나는 대립에 비판적 시선을 섞는다. 해당 언론사는 11일 "문체부가 게임회사 대변인인가"라는 제목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밖에 문체부와 복지부의 갈등을 불러싸고 '반기'를 들었다고 표현하거나 정부 비판 프레임을 적용시키는 기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슈의 중심에서 늘 벗어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주무부처로서 업계 입장을 이끌고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체부가 발전했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현재 게임이용장애 국내 코드 도입 갈등이 연착륙 가능할지의 문제는 문체부의 손을 떠나 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완화제 역할을 해낸다면,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합의는 더 순조로워질지도 모른다.

ICD-11이 2022년 발효돼도 한국질병분류(KCD)를 개정하는 2025년까지 여유 시간은 있다. 하지만 KCD가 큰 이변이 없는 한 ICD 중심으로 개정되기 때문에, 문체부는 2022년까지 여론 작업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문체부의 의견 수렴과 대외 활동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문체부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매년 게임진흥 예산 발표마다 지원 방향의 디테일에서 아쉬움을 자아냈고, 신임 장관 이후 처음 발표되는 2020년 예산에서 진정으로 게임업계 이해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게임을 향한 여론과 선입견은 아직 불리하며, 게임업계 내부에서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규제와 예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굿 스타트'를 보여준 문체부가 얼마나 더 달려갈 수 있을까. 진짜 숙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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